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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월정사 - 천년의 숲길걷기대회


 지난 토요일. 그러니까 5월 8일 어버이날에 월정사에서 천년의 숲길걷기대회가 있었습니다.

 이런 듣도 보도 못한 행사에 참가하게 된 건
 그냥 지금 부모님이 계신 곳이 평창 오대산 근처이고,
 마침 주말이 어버이날이었고,
 하필 행사가 그 날이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한 번 참가해 보고 싶었다구요. 듣도 보도 못한 축제에...



천년의 사찰 월정사

 자, 걷기 전에 일단 월정사에 대해 조금만 알아봅니다.
 월정사는 신라 선덕여왕 12년(643년)에 창건된 천년도 더 된 사찰입니다.
 
 이렇게 긴 역사를 가진 절이라 그런지 주위 지역주민들이 참여 할만한 다양한 행사를 때때로 합니다.
 아니, 한다고 합니다. 직접 가본건 이게 처음이니...



전나무 숲에서 시작하는 첫 걸음

 토요일 아침부터 시작하는 행사이기 때문에 일찍 일어나야 하는 건 당연지사.
 어머니의 엄명에 따라 이미 금요일 저녁에 강원도에 모두 모인 가족들은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작년에도 참여하셨던 부모님 말씀을 들어보면 월정사에서 상원사까지 걷는다는데,
 그 길은 차도 다닐 수 있는 길이라 넓고 경사도 별로 없으니 걱정없이 쿨쿨 잡니다.

 그리고 이 아이는 다음날 부모님 말씀은 끝까지 잘 들어보자는 교훈을 얻게 됩니다.
 ...

 드디어 5월 8일. 아침 7시부터 밥먹고 짐싸느라 분주합니다.
 늦으면 주차할 곳이 없을 거라는 부모님 말씀을 듣고 후딱 대충 준비해서 오대산으로 향하는데,
 날씨가 좀 춥습니다. 아참 여기 강원도지 -_-
 걷다보면 따뜻해지겠지 라는 생각으로 일단 월정사까지 가봅니다.
 도착해보니 아직 주차장은 텅텅 비어 있었습니다. 역시 스피디한 우리 가족답네요.
 는 뻥이고 집에서 20분거린데 늦을리가...
 근데 다른 지역에서 오는 사람들은 대체 몇시에 출발하는건지... 흠 좀 무섭네요.

편한 걷기대회를 위한 몇 가지 Tip :
. 아침은 든든히 먹어둬라 점심은 지옥에서 먹게 될테니.
. 출발할 땐 세 벌, 걷는 중엔 한 벌, 도착해선 두 벌 입는 것은? - '얇은 옷'으로 여러벌 입고가기.
. 일찍 일어나는 새가 주차하기 편하다.
. 이거 등산아님. 먹을 거 많이 안 챙겨도 됨.
. 매표소에서 용무를 물을 때 '걷기 대회 참가yo'라고 하면 이 날은 무료 입장.


 행사 시작시간인 10시까지는 시간이 좀 있으니 월정사 경내 구경이나 해보죠.




△ 템플스테이중인 가족들이 연등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 해마다 석가탄신일이 돌아오면 경내에는
    이름과 소원이 적힌 연등이
    화려하게 장식된다.





   경내에 들어서면 수많은 연등이 먼저 눈길을 끕니다. 월정사는 큰 절답게 많은 사람들이 소원을 빌어오나 봅니다. 이건 일반적인 석가탄신일을 앞둔 사찰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네요.
 이와 함께 한쪽에선 작년 사진 공모전에서 입상한 작품전시회와 내년 소지의식 때 쓸 소원을 서원지에 쓰는 행사가 있습니다. 작품전시회 사진은 찍질 않았네요. 저...절대 샘나서 그런거 아니라능!
 그리고 우리가 교과서에서 익히보았던 8각9층석탑 앞에는 채식라면이 엄청나게 쌓여 있었습니다. 역시 절에서는 라면도 채식으로 나눠주네요. 근데 국보앞에 쌓여있는 라면 박스를 보니 웃음이 절로 나옵니다.
















◁ 소외계층과 다문화가정에 나눠준다는 채식라면 천박스가
    8각9층석탑앞에서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 나눠주는 서원지에 각자의 소원을 쓰고 있다.
    서원지는 월정사에서 1년간 보관하며 그 소원을 빈 뒤
    내년 같은 행사때 소지의식을 거쳐 천도한다고 한다.


 사실 종교와 관계맺는 걸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서원지 쓰면 땀 닦을 수건을 하나 줍니다.
 써야죠. 공짠데.

 10시가 되니 사람도 좀 많아지고 행사를 시작합니다.
 행사 시작 전에 법고(法鼓)를 치는데 그 소리가 참 좋더랍니다. 빠르면서도 경박하지 않고, 힘차면서도 고요한 북소리. 북이 울리는 그 시간 동안은 다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을만큼 집중하게 되더라구요. 처음 들어본 법고 소리라 그랬을 지도 모르겠네요.

△ 수많은 속인들의 눈을 등에 지고 스님이 법고를 치고 있다. 월정사의 또 다른 행사인 산사음악회 때에는 법고 대회가 열리기도 한다.

 대회 시작에 앞서 주지스님 말씀과 라면 전달식, 뭐 이딴 학창시절 아침 조회같은 풍경이 지나간 후 드디어 본격적으로 걷기 대회를 시작합니다. 코스는 월정사에서 바로 상원사 쪽으로 가는 줄 알았더니 전나무 숲을 통해 입구로 내려갔다가 다시 월정사로 향하는 코스였습니다. 작년까지는 구간이 상원사까지 였는데 올해는 오대산장까지로 바뀌었나 봅니다. 덕분에 거리도 더 짧아졌네요.

























◁ 참가자들이 다리를 건너며 출발하고 있다.
    날씨도 화창하고 선선하여 많은 사람들이 참가하였다.







 오오... 걷기라는 주요퀘스트 말고도 서브퀘스트가 몇개 있습니다.
 보물 찾기, 사진공모전, 음악회 등등... 근데 보물찾기는 어린이들만 가능하네요. 사진공모전도 저한텐 별 의미가 없고, 음악회는 도착해야 볼 수 있는거고... 그냥 걷기나 하라는 얘기네요 네.
 그래도 출발할 때 오이하나랑 작은 생수 하나 줍니다. 우왕ㅋ 그냥 맨 몸으로 와도 충분히 걷겠어요.

 뭐 어차피 가야할 길 동생과 나란히 신나게 걷습니다. 주지스님도 따라잡고 지역방송인지 뭔지 카메라 들고 다니는 사람들도 제치고 열심히 열심히 걷는데 어째 추월하고 추월해도 앞에 가는 사람은 계속 나오네요. 분명히 우리도 거의 선두로 출발했는데... 어찌된거지 -_-; 게다가 강한친구 대한육군이 우릴 추월해갑니다. 역시 강하네요. 근데 군인들이 여긴 왜......

△ 오른손엔 오이 왼손엔 물. 복장에다 발까지 맞춰 걷는걸 보니 역시 군인이란 생각이 든다.



지금 아니면 걸어보지 않을 옛길

 사실 이 행사는 '옛길따라 걷기대회'라고 하지만 딱히 대회를 하는 건 아니더군요. 걷기대회는 아니지만 옛길은 따라 갑니다. 아마 옛사람들이 오대산을 다닐 때 걸어다녔던 길인가 봅니다. 좋은 길 냅두고 냇가를 건너갔다 건너왔다 산길갔다가 논길갔다가 하다보니 가볍게 생각하고 운동화 달랑 신고 온 내 자신이 원망스럽습니다. 그래도 5km정도는 걸어야 하니까요. 중간에 소달구지 1등석에 타고 가던 아이들이 매우 부러웠습니다.
 그렇게
 걷고...
 걷고...
 걷고...
 걸어서...
 걸으니...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지금보니 걸으면서 찍은 사진이 없네요. 어지간히 귀찮았던듯 합니다. 그래도 중간중간 예쁜 풍경도 있었고, 징검다리 건너면서 보았던 냇물은 정말 맑았습니다. 눈엔 잘 안 들어오지만요.
 어쨌든 도착하니 번호표와 주먹밥을 줍니다. 이... 이것은 경품추첨! 잘 보관해놓고 근처 마련된 무대가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습니다. 그리고 주먹밥을 처묵처묵.
 배가 고프니 참 맛있...어야 하는데 맛이 좀 밍숭맹숭합니다. 역시 절밥은 다르군!











  ▷ "당근이 들어있는게 더 맛있네."
      두 번째 주먹밥을 베어문 동생이
      말한다. 김이 아니라 나물과 당근이
      들어간 주먹밥은 심심한 맛이 났다.
      그래도 배고픈 우리의 배를
      채우기엔 더할 나위없이 좋았다.

 
 무대 앞에 놓여있는 반짝반짝한 자전거 십여대를 보면서 경품은 언제 추첨하나 하고 있는데 동생의 눈은 다른데를 보며 초롱초롱 합니다. 동생의 눈을 따라가보니 웬 연예인이 한 사람 있네요. 야인시대 나미꼬?!
 눈치챈 사람들 여럿이 웅성댑니다. 알고보니 이세은씨는 걷기대회 홍보대사라네요. 이런 산 중에서 연예인을 보다니 참 신기합니다. 군인들이 사인 해달라니 사인도 해줍니다. 그 비둘기색 트레이닝복 위에... -_- 나도 군인인데 왜 난 안해줘요 잉.



아무것도 없어 가벼운 귀갓길

 사람들이 대충 다 도착하니 무대에서 음악회를 시작합니다. 중간중간 경품도 뽑고 하는데, 자전거 한 대 받을 줄 알았죠? 못 받아요. 나물 100박스 중에 한 박스라도 얻을 줄 알았죠? 못 받아요. 결국 경품은 물 건너가고 작년 서원지를 태우는 소지의식과 함께 걷기대회가 막을 내립니다. 경품번호표를 태우면 내년엔 자전거 한대 받을 수 있을까요, 부처님.















◁▷
소원이 담긴 서원지는 항아리에 넣고
태운다. 종이에 담긴 염원이 연기되어 하늘에 가 닿으면 이루어지리라.



 행사가 끝나자마자 눈치빠른&베테랑 참가자들은 재빨리 하행버스를 타기 위해 줄을 서 있습니다. 가족 중 한 사람이라도 타고 내려가면 차를 끌고 올라와서 가족 모두가 편히 갈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튼튼한 우리 가족은 걸어서 내려가기로 합니다. 경품으로 자전거를 받은 사람들이 옆으로 자전거를 타고 유유히 지나갑니다. 부럽습니다. 그래도 걷기로 한 날이니, 또 마침 어버이 날이니 부모님과 도란도란 얘기 나누며 걸어내려오는 길이 마냥 힘들지 만은 않은 하루였습니다.